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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국어국문전공 학술답사 (제주도)
국어국문 <www4340@ddongduk.ac.kr> 조회수:2247
2006-05-05 03:05:00

2006년도 국어국문학과 학술답사 보고서

□ 일 시 : 2006. 4. 27(목) ~ 29(토) 2박 3일간

□ 장 소 : 제주도 일대

□ 참가인원 : 국문과 교수님 4분, 조교, 국문과 학생 106명

□ 답사순서 :

첫째날(삼성혈 → 해신당/섭지코지 → 성읍 민속마을)

둘째날(한림읍 금릉리 당집 → 대정 송악산 → 산방산/산방사 → 대정 추사 적거지 → 새별오름)

셋째날(한림공원 → 금릉리 해수욕장 → 조천포구 연북정 → 오현단)

   


첫째날 (4/27 목)

1. 삼성혈

제주시의 삼성혈은 제주민의 탄생설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 134호로 지정된 삼성혈은 탐라국을 연 세 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곳으로 세 신인이 솟아났다는 세 개의 구멍이 품(品)자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세 신인은 수렵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온평리 바닷가에 떠밀려온 나무궤짝 안에서 나온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를 각각 맞이하여 혼인하고, 세 공주가 가지고 온 오곡(五穀)의 씨앗, 송아지, 망아지를 가지고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오늘의 제주도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이 삼성혈을 통해서 세 신인이 탐라국이라는 독립국가를 설립했다는 것과 다른 나라들처럼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롭게 국가가 운영되었다는 점에 주목을 해야한다고 한다.

우리는 삼성혈 사적지에서 ‘삼성혈’과 세 신인의 위패가 봉안 된 ‘삼성전’, 전시관을 관람했으며 삼성혈 신화에 대한 영상물을 시청함으로써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2. 해신당

바닷가의 신당이라는 뜻의 해신당(海神堂)은 험한 바다와 싸우면서 공존해야 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주민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구심적 공간이었다. 풍족한 재물과 복을 빌고 액을 방지하려는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는 장소인 셈이다.

3. 섭지코지

신양해수욕장에서 2km에 걸쳐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는 곳이다. 섭지란 재사(才士)가 많이 배출되는 지세란 뜻이며, 코지는 곶을 뜻하는 제주방언이다. 송이라는 붉은 화산재로 형성된 언덕 위에는 왜적이 침입하면 봉화불을 피워 마을의 위급함을 알렸다는 봉수대(연대)가 있다. 또한 용왕의 아들이 이곳에 내려온 선녀에게 반하여 선녀를 따라 하늘로 승천하려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그 자리에서 선채로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어린 선녀바위도 솟아 있다.

노란 유채꽃과 여유롭게 풀을 뜯는 제주조랑말들과 바위로 둘러쌓인 해안절벽 등이 함께 어우려서 아름다운 해안풍경이 일품인 곳이었다.

4. 성읍민속마을

성읍리는 원래 제주도가 방위상 3현으로 나뉘어 통치되었을 때(1410-1914) 정의현의 도읍지였던 마을로서 제주도 옛민가의 특 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유형, 무형의 많은 문화유산이 집단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옛마을 형태의 민속경관이 잘 유지되 어 그 옛모습을 계속 유지하고자 민속마을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옛 민가, 향교, 옛 관공서, 돌하루방, 연자방아, 성터, 비석 등의 유형 문화유산과 중산간 지대 특유의 민요, 민속놀이, 향토음식, 민간공예, 제주방언 등의 무형 문화유산이 아직까지 전수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 161호인 느티나무, 팽나무 등은 오백 년 도읍지로서의 긍지를 엿볼 수 있다.

성읍민속마을에서는 마을주민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직접 안내를 해주신다. 우리들도 마을주민들께 직접 안내를 받아 더욱 생생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둘째날 (4/28 금)

5. 한림읍 금릉 포제단과 본향당

제주도는 섬이라는 자연적 한계, 곧 거센 파도와 싸우며 살아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신에게 의존하는 바가 컸다. 본향당, 포제단 등으로 제주도에 다양한 민간신앙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모진 삶 때문이다.

마을의 토지와 그 마을사람들의 출생, 사망 등의 일을 맡아보는 신을 모셨는데 이 신이 본향신이며 본향신을 모신 곳이 본향당이다. 포제단을 사이에 두고 할망당은 그 왼쪽(서쪽), 하르방당은 그 오른쪽(동쪽)에 있다. 포제단은 조금 높은 동산에 위치하고, 두 당은 동산 아래쪽 조금 비탈진 곳에 있다.

또한 포제단은 유교문화를 상징한다. 포제단은 유교식 제사형식의 ‘포제’를 봉행하는 장소를 말하며 자연석을 잘 다듬어 여러 겹으로 쌓아 장방형의 담을 둘러 놓은 이 제장은 매우 넓은 편이다.

6. 대정 송악산

산방산(395m)의 남쪽,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바닷가에 불끈 솟은 산이 송악산이다.

99개의 작은 봉우리가 모여 일명 99봉이라고도 하고 바다 물결이 산허리 절벽에 부딪쳐 우레 같이 울리기 때문에 제주말로 물결(절)이 운다는 뜻으로 ‘절울이’라고도 한다. 송악산은 그 모양새가 다른 화산들과는 달리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바닷가 해안 절벽에는 일제 때 일본군이 제주 사람들을 동원해 뚫어 놓은 동굴 15개가 있다. ‘일오동굴’이라 불리는 이 굴들은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제주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강제노력의 참상을 보여주며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7. 산방산/산방사

산방산은 빨래를 하던 설문대 할망이 어쩌다 방망이를 잘못 놀려 그 센 힘으로 한라산을 치는 바람에 한라산 봉우리가 날아와 떨어진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옛날 어느 사냥꾼이 쏜 화살이 옥황상제를 건드렸는데 이에 화가 치민 옥황상제가 한라산의 정상부를 뚝 떼서 사냥꾼에게 집어던져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때 뚝 들려나간 부위가 한라산의 백록담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산방산 아래에는 산방사라는 절이 위치해 있다.

8. 대정 추사 적거지

조선시대의 대학자(大學者)이며, 서예가, 정치가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선생이 55세가 되던 조선조 헌종 때 윤상도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먼 유배길에 올라 9년간의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추사는 이곳에서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하였고 세한도(歲寒圖)와 같은 불후의 서화들을 남겼다. 또한 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 등 이 지방의 교학(敎學)에도 많은 공적을 남겼다. 이 곳에서는 적거지 뿐만 아니라 전시관에서 시와 서화등의 탁본도 여러점 볼 수 있었다.

9. 새별오름

오름은 ‘오르다’의 명사형으로, 독립된 산 또는 봉우리를 이르는 말인 오름은 신제로는 한라산 자락에 산재된 기생화산을 지칭한다. 옛날부터 제주사람들은 이 오름 주변에 마을을 세웠고 곡식을 일구었으며, 신앙의 텃자리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는 그곳에 뼈를 묻곤 했으며 비상시에는 봉수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가 오른 새별오름은 예쁜 이름만큼이나 고운 능선을 갖고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져 상념에 푹 빠지게 하는 곳이었다. 새별오름에는 곳곳에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고즈넉한 새별오름의 분위기가 영혼들이 쉬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날(4/29 토)

10. 한림공원

하늘로 치솟은 야자수가 양옆으로 주욱 늘어선 야자수길의 이국적인 전경이 공원의 문지기 역활을 하고 있는 한림공원은 제주의 용암동굴인 협재동굴 쌍용굴을 체험할 수 있었고 갖가지 아열대식물을 볼 수 있는 식물원과 제주의 민속마을을 구경할 수 있는 재암민속마을 등이 한데 모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11. 금릉 해수욕장

한림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금릉 해수욕장은 그림같은 흰 백사장과 옥색 빛 바다가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12. 조천포구 연북정

연북정은 제주로 파견된 관리 또는 유배인이 고향과 임금이 있는 북녘 한양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던 정자이다. 꽤 높직한 축대 위에 팔각지붕집으로 창호 없이 사방이 개방된 정자이며, 주변에 성곽이 둘러싸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망루 용도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연북정에 서면, 유배온 사람들이 제주 관문인 이곳에서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며 북녘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 하여 붙여진 이름처럼, 비록 멀리 파견 또는 유배온 형편이지만 임금과 두고 온 가족, 그리고 고향을 연모했을 그들의 사무치는 마음이 바다내음과 함께 애틋하게 느껴진다.

13. 오현단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 발전에 공헌한 다섯 사람(오현-충암 김정,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규암 송인수, 우암 송시열)들의 위패를 모신 제단이다.

바다 건너 먼 유배의 섬으로 인식되던 제주에 도도히 흐르는 선비정신을 심어준 옛 선현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곳으로써 제주 지역에 일구어낸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배향했던 귤림서원 자리에 마련된 제단이 바로 오현단이다. 오랜 역사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잊혀져가는 정신을 한번 쯤 돌아볼 수 있는 이곳은 과거에 제주의 대표적인 사학인 오현학원이 옮겨진 이후에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당당히 자리를 지키는 고목들이 지나는 발걸음을 경건하게 한다.

 

□ 3일간의 제주답사는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명쾌하게 마칠 수 있었다. 삼성혈을 시작으로 하여 오현단으로 마무리 지은 이번 답사는 제주의 건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알차게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조금 더 시간을 내어 비극적이었던 제주의 근대사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관광도시의 역할만 하는 섬이라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깊은 역사를 가진 곳이라는 것과 제주민들의 척박한 삶에 대한 개적정신이 가득 담긴 소중한 섬이라는 교훈을 갖게 된 것은 이번 답사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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